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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블레싱

고난이 준 감사와 기쁨

2021년 05월 이경숙 사모_ 사랑과감사교회

신앙의 용장과 같은 친정어머니의 기도나는 신앙의 용장과 같은 어머니 밑에서 8남매 중 막내딸로 자랐다. 어머니께서는 큰 과수 농장을 하셨기 때문에 매우 피곤하셨음에도, 저녁마다 사과나무 밑에 가마니를 깔고 2시간 이상 우렁찬 목소리로 나라와 민족, 교회, 목사님들, 자녀들, 성도들, 전도 대상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우리 남매를 모아 놓고 가정예배를 드릴 때면 어머니의 기도가 매우 길어서 졸면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많은 자녀 중에 한 명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소원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어려운 목회...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2021년 04월 김창선 사모_ 울산교회

“내가 너를 사랑한다” 주님께서 부르시던 밤나는 1969년 경기도 입석수양관에서 열린 CCC(대학생선교회) 여름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나를 자녀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은 척하며 믿지 못하겠다고, 믿지 않겠다고 내 의지로 살면 된다고 고집부리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주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며, 전도자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밤을 결코 잊을...

고난의 연단을 넘어

2021년 03월 표선희 사모_ 광주 만남의교회

청년연합 수련회에서 만난 남편청소년 시절 시작한 신앙생활은 내 모든 삶을 바꿔 놓았다. 교회를 좋아하고 섬기는 것이 좋았다. 교회에 가서 봉사하기를 즐겨 했고, 특별히 강대상 청소나 지역 교회에 헌금 바구니를 제작해 나눠 드리는 일을 했었다. 청년 시절에 섬기던 일로중앙교회에서 함평 무안지역 청년연합회 수련회가 열렸다. 약 150명 정도의 청년들이 모이는 수련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당시 고등학교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터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수련회 전체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남편이 수련회 기간 동안 앞에서 ...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2021년 01월 김혜옥 사모_ 부전교회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도서관의 웬만한 동화책은 다 읽었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동화 속의 세계는 낯설지만 신기하고 흥미로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길이 동화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길은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길이었다. 주님께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고, 알 수도 없는 길을 사랑과 은혜로 인도해 주셨다. 믿음의 가정과 구원의 은혜를 주시다해마다 여름성경학교를 할 때가 되면 우리 집에는 교회 선생님들이 점심을 드시러 오곤 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신앙을 갖게 된 어머니는 교회의 ...

십자가만 바라보며 남편과 함께 걷는 길

2020년 12월 김우주 사모_ 대구 성덕교회

교회 테두리 안에서 자라다초등학교 때인지 아니면 더 어릴 때였는지, 나는 경북 예안에서 목회하시던 외할아버지 교회에서 방학을 자주 보내곤 했다. 외할아버지의 교회에는 장애인 성도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장애인 특수목회를 하셨던 것 같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나이 지긋한 분이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풍금을 치셨다. 또 뭉툭한 하반신을 검은 고무 밴드로 칭칭 감은 어떤 분은 반쪽짜리 여행용 캐리어에 몸을 담그고 두 팔로 땅을 노젓듯 하며 열심히 예배당 언덕을 올라오시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 외...

농촌 교회와 함께한 아름다운 인생길

2020년 11월 김종분 사모_ 고성 삼산교회

돌아보면 모두 감사나는 26세에 한 번의 순종으로 42년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주의 날개 안에 둥지를 틀고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충분히 입었다. 환경이나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감사하며 웃으면서 살아왔던 세월을 돌이켜 보면 어떻게 이런 무궁무진한 은혜가 가능할까 감사할 뿐이다. 시편 91편 1절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눈이 확 뜨였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그 그늘 아래 주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 교회, 성도를 우선순위로 사명을 따라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평안을 누...

복음 들고, 사랑 안고

2020년 09월 고정희 사모_ 춘천 주향교회

나는 매년 초파일이면 자녀의 이름으로 절에 등을 다시던 부모님 밑에서 평탄하게 자랐다. 대학교에 입학해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1학년 2학기 첫 주일에 기숙사에 있던 고등학교 선배 언니의 초청에 거절을 못 하고 따라간 곳이 사랑의교회였다. 어릴 때 친구 따라, 선생님 초청으로 교회에 한두 번 가 본 적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찬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 당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모르는데 이 많은 사람이 예배하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고, 호기심에 열심히 선배 언니를 따라 사랑의교회 대학부에 다니게 ...

나의 사랑, 나의 교회, 나의 예수님(하)

2020년 07월 조성희 사모_ 새로남교회

사명으로 부임한 새로남교회아름다운 목회를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려고 했던 우리 부부는 생각지 못한 시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사명으로 새로남교회 부임을 결정했다. 새로남교회는 전임 목회자가 떠나고, 7 개월간 공석인 상태에서 성도들이 치열하게 싸우던 교회였다. 더 이상 사역자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청빙 위원들은 일면식도 없던 고(故) 옥한흠 목사님께 사역자를 부탁하는 편지를 드렸다. 당시 새로남교회의 사정을 모르셨던 옥 목사님은 중부지역에 제자훈련 교회를 세우고 싶으셨는지 우리에게 부임을 강권하셨다. 미국에서 두 번의 청빙을 받고도 다...

나의 사랑, 나의 교회, 나의 예수님(상)

2020년 06월 조성희 사모_ 새로남교회

내 모든 소망이 머문 곳, 교회처음으로 내 삶에 대한 간증을 쓰려고 60여 년을 돌아보니 긴장이 된다. 내 삶의 간증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내 걸음을 이끄셨던 이야기 외에는 쓸 것이 없는 것 같다. 모태신앙으로 교회 마당을 밟았던 내게 유년 시절 최고의 즐거움은 교회에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열심을 냈고, 덕분에 주일학교 개근상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모범 어린이였다. 교회가 많지 않았던 60년대에 먼 거리를 걸어서 교회에 가면 나른하게 졸리기도 했다. 졸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느라 온몸으로 연기하며 설교하셨던 전도사님이 ...

이끄시는 대로 순종한 삶

2020년 05월 박은실 사모_ 신일교회

낯설고 어색했던 이름, 사모1993년 9월, 나는 당시 고등부 전도사였던 남편과 결혼했고 자연스럽게 사모가 됐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는데, 어찌나 그 이름이 낯설고 어색하던지 누군가가 “사모님”하고 부를까 봐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다. 마치 나는 겨우 덧셈, 뺄셈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사모님” 하고 부르면 2차 방정식까지도 척척 풀어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모의 삶도 어느새 28년 차가 됐다.나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친정 부모님은 일찍 예수님을 믿으셨다. 특히 재작년에 소천하신 친정아버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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