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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소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 - 호머 헐버트 선교사

2019년 10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호머 헐버트 선교사(Homer. B. Hulbert, 1863~1949) 1863년 1월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나 다트머스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온신학교 재학 중에 조선에 입국해 육영공원의 교사로 신식 교육의 기틀을 잡았다. 구한말의 정치적 격동 속 일제의 만행에 분노한 그는 한국인에게 민족 의식을 일깨우고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는 등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다. 미국에 강제 소환된 뒤에도 꾸준히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애쓴 그는 1949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한 뒤 일주일 만에 소천해 양화진에 묻혔다. 정부는 건국훈장...

한반도에 울리는 복음의 선율(旋律) - 드와이트 말스베리 선교사

2019년 09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드와이트 말스베리 선교사(Dwight R. Malsbary, 1899~1977, 마두원)1899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시카고의 셔우드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북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1929년 내한했다. 숭실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숭실밴드를 조직해 한국은 물론 만주에서도 공연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숭실전문학교가 자진 폐교하자 개인적으로 학생을 양육하는 등 복음 전파에 힘쓰다가 추방당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과 강원도 홍천을 중심으로 음악 사역과 교회 개척 등에 힘써 홍천에 제이드(Jade)병원을 설립했다....

복음은 낮아짐을 통해 전파되고 전파된다 - 사무엘 무어 선교사

2019년 07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사무엘 무어 선교사(Samuel F. Moore, 모삼열, 1860~1906) 1846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북장로교에서 파송을 받아 1892년 한국에 입국했다. 곤당골교회를 개척하고 예수학교를 시작하는 등 복음 전파와 교육 사역에 힘썼다. 서민을 사랑했던 그는 백정 마을에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양인들이 따로 교회를 세워 나가는 아픔을 겪었지만 기도하며 화합을 이끌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과 가까이 지내며 사역하던 그는 장티푸스에 걸려 제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병세 악화로 1906년 소천했다.1895년 10...

부르고 싶은 이름, 오목사(吳牧師)! -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

2019년 06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Clement C. Owen, 1867-1909, 오기원, 오원) 1867년 미국의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버지니아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미국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파송받아 1898년 입국했다. 유진 벨 선교사 가정과 함께 목포에 본부를 꾸리고 의료, 교육 사역에 힘을 쏟았으며 전남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건강이 악화돼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바로 귀국해 광주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교회와 학교를 설립해 복음 전도에 힘썼다. 잠시도 쉬지 않고 전도에 열정을 쏟아 붓던 어느 봄날, 급성 폐...

말씀만이 생명을 전하는 데 최선이다 -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

2019년 05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William David Reynolds, 1867~1951, 이눌서) 1851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햄든-시드니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목사가 되기 위해 유니온신학교에 진학했으나 선교사로 헌신하고 남장로교 소속으로 1892년 한국으로 왔다. 충청, 호남지역에 관심을 갖고 한국인 정해원을 파송해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전주교회(현 전주서문교회)를 개척했다.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어 성경 번역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평양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던 중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지만, 평양신학교 폐교로 인해 한국으로 ...

3·1 만세운동 100주년, 다시 그날을 기억하다 - 조지 맥큔 선교사

2019년 04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조지 맥큔 선교사(George Shannon McCune, 1873~1941, 윤산온) 1873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파크대학과 미주리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1905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으로 한국에 파송받았다. 그는 3·1 만세운동과 105인 사건 같은 초기 독립운동사의 굵직한 사건을 외국에 알리다 추방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28년 재입국한 뒤 숭실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신사 참배에 저항하다가 파면당하고 다시 추방된 후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1941년 소천했다.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다! 대한 독립 만세!! -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2019년 03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Frank W. Schofield, 1889~1970, 석호필)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해 1911년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했다. 1916년 세브란스의전 교장이었던 에비슨의 초청으로 캐나다장로회 파송을 받아 한국으로 왔다. 민족 지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일제의 만행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외국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한국인의 곁에 있었다. 일본의 눈엣가시였던 스코필드는 1920년 강제 추방당했으나 해방 후 정부의 초청으로 돌아와 평생을 한국의 교육에 헌신했다. 한국이 그를 가장 필요로 했을 ...

기독교 교육에 헌신하며 일제의 만행을 알리다 - 윌리엄 린튼 선교사

2019년 0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린튼 선교사 (William Alderman Linton, 1891~1960) 1912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포함해 48년간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사역했다. 1919년 8월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 대회에 참석해 3·1운동의 실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전주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제의 강제적인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해 일제로부터 추방당했다.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의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나...

두 번의 눈물, 세 번의 헌신: 고귀하고 위대한 유진의 삶- 유진 벨 선교사

2019년 0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유진 벨 선교사 (Eugene Bell, 1868-1925, 배유지)유진 벨은 1868년 미국 켄터키주 스코트스테이션에서 태어나 센터 칼리지와 루이빌신학교를 졸업했다. 1895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특히 교육과 의료 사역에 헌신해 목포와 광주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역하던 중 두 번이나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끝까지 한국에서 헌신하다가 1925년 소천해 광주시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혔다. 그의 후손이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하는 등 계속해서...

예수를 사랑한 사람, 예수가 사랑한 사람 - 애니 베어드 선교사

2018년 1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애니 베어드 선교사(Annie Laurie Baird, 1864-1916, 안애리)1864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하노버대학 재학 중 만난 윌리엄 베어드(숭실학당 설립자)와 결혼한 후 1891년 조선에 도착해 사역을 시작했다. 숭실학당의 교수로 사역하며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수많은 찬송가와 대학 교재를 번역하고 문학 작품을 편찬했다. 암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기를 소망해 다시 돌아와 1916년 평양에서 소천했다. 베어드 부부의 묘비가 양화진에 있어 그들의 한국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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