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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소개

가교(架橋), 두르고 싸매고 보듬는 삶 - 겔손 엥겔 선교사

2018년 07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겔손 엥겔 선교사(Gelson Engel, 왕길지, 1868~1939)독일에서 태어나 교사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대회에서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1892년부터 인도에서 교육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그곳에서 클라라 바스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다. 6년의 인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해 선교 사역을 위해 기도하던 중,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 여선교회연합회의 요청을 받아 부산으로 파송된다. 호주 파송 선교사들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한 그는 순회전도자이자 목회자, 교육자로서 37년간 조선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아시아의 동쪽...

예수(耶蘇),오직 그 이름만 외치다! - 새뮤얼 모펫 선교사

2018년 06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새뮤얼 모펫 선교사(Samuel Austin Moffett, 마포삼열, 1864~1939)미국에서 태어나 하노빌대학과 맥코믹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신학교 동기 다니엘 기포드 선교사를 따라 1890년 조선의 선교사로 파송돼, 평양에서 사랑방 선교를 통해 널다리교회(현, 장대현교회)를 세웠다. 이후 조선인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평양신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24년간 사역했고,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와 함께 숭실중학, 숭실대학, 숭의여학교를 설립했다. 조선에서 45년간 사역하다 열사병에 걸려 1936년 미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야소(耶蘇), 야소(耶蘇), ...

사랑방(舍廊房)에서 전해진 예수 사랑 -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2018년 05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William M. Baird, 1862~1931, 裵偉良)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는 미국에서 태어나 맥코믹신학교에 재학하던 중 무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평양 개척 선교사로 활동한 사무엘 마펫의 인도로, 아내 애니 로리 아담스와 조선으로 향한 그는 부산으로 파송된다. 부산에서 전도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사랑방을 서당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에서 선교부 개척과 교육 사역에 힘쓰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평양으로 가서 숭실학당을 세웠다. 선교 사...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뿌린 씨앗, 복음! -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2018년 04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Joseph Henry Davies, 1856~1890, 德倍時)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청교도 배경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과 호주로 이민을 갔다. 대학생 시절 동생과 함께 인도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으며, 이후 호주로 돌아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콜필드학교를 세웠다. 다시 인도 선교를 준비하던 중, 조선에 대한 글을 접하고 누나와 함께 조선 선교사로 헌신한다. 조선에서 언어 공부와 선교에 매진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그는, 부산으로 향하던 배에서 천연두에 감염돼 폐렴으로 짧은 생을 마쳤다.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

사람을 세우는 하나님의 사람 -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

2018년 03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Oliver R. Avision, 어비신, 1860~1956)영국에서 태어나 6세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사범대학과 약학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해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언더우드 선교사의 도전으로 조선의 의료선교사로 헌신하게 됐다. 제중원 4대 원장으로 사역하면서 조선인 의사 양성의 꿈을 품고, 세브란스의학교와 병원, 연희전문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한국 의학이 스스로 서기를 바라며 모든 사역을 위임하고 떠난 이듬해, 96세의 일기로 사명을 다했다.1907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장로회공의회에서 7...

부르고 싶은 이름 ‘평양 오마니’ -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

2018년 0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 부부는 1890∼1891년 잇따라 한국에 들어와 의료 선교에 힘썼다. 남편이 1894년 평양에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홀은 귀국했다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왔다. 홀은 평양에 기홀병원과 광혜여원을 세웠고, 한국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해 맹인교육을 실시했다. 1917년부터는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여자의학원(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을 설립했다. 1951년 85세로 사망한 홀은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nbs...

다시 복음 앞에, 다시 이웃 곁에 - 박에스더 선교사

2018년 0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박에스더(Esther K. Pak, 김정동[金點童], 1877~1910)박에스더 선교사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에스더는 세례명이고 남편의 성을 따랐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돕던 김홍택의 셋째 딸로, 이화학당에서 수학했다. 보구여관에서 통역과 간호 보조로 일하다가 의사의 소명을 받았다. 박유산과 결혼한 뒤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해 한국 최초로 여성 의사가 됐다. 귀국해 의료와 교육 사역에 헌신하다가 서른넷에 결핵으로 소천했다.  1900년 성탄절, 한국 최초의 신학 잡지 <신학월보>가 창간됐다. 순한글로 발행된 이 잡지는 ...

나는 지금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 셔우드 홀 선교사

2017년 1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셔우드 홀(Sherwood Hall, 하락[賀樂], 1893~1991)셔우드 홀 선교사는 로제타 홀과 제임스 홀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의료선교 사역을 돕던 그는 사업가의 꿈을 접고 결핵 전문의가 돼 한국에서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했다. 1932년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해 결핵요양병원을 설립했고, <요양촌>이라는 보건 잡지도 발간해 결핵 예방에 앞장섰다. 이후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을 발간하기도 했다.‘우리 시대의 영웅, 소방관’ 올해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의 주제다. 대한결핵협회가 화재, 재난, 재해, 그 밖...

가라 하신 그곳에서 -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

2017년 1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하락[賀樂], 1860~1894)캐나다의 의료선교사로서 1891년 조선에 도착했으며, 1892년 R.S. 홀과 결혼하고, 1893년 아들 S. 홀이 태어났다. 평양선교기지 개척 책임자였으며, 의료봉사를 위해 조선 각지를 순회했다. 의료선교사업을 하다가 1894년 발진티푸스로 소천 후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 1897년 평양에 홀기념병원이 개원됐으며, 미국에서 <월리엄 제임스 홀의 생애>가 출간되기도 했다.옛적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는 전래민요 한가락이 있다. 지방마다 곡조가 조금은...

조선 여성들에게 전한 예수 사랑 -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

2017년 10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메리 스크랜턴(Mary Fletcher Scranton, 1832~1909)1885년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가정과 함께 조선으로 파송된 첫 여선교사. 조선 여인들을 위해 수많은 학교와 교회를 세웠으며, 여성 전문 병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정년을 넘긴 나이에도 전도부인들과 순회 전도를 하다가 1909년 세상을 떠나 양화진외국인묘역에 안장됐다.“어머니가 심히 아파 우리 모두 걱정입니다. 지금 어머니는 겨우 침대 밖으로 나올 정도이고 아무 사역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1901년 2월, 선교 본부로 보내는 아들의 편지에는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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