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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소개

부르고 싶은 이름, 오목사(吳牧師)! -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

2019년 06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클레멘트 오웬 선교사(Clement C. Owen, 1867-1909, 오기원, 오원) 1867년 미국의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버지니아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미국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파송받아 1898년 입국했다. 유진 벨 선교사 가정과 함께 목포에 본부를 꾸리고 의료, 교육 사역에 힘을 쏟았으며 전남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건강이 악화돼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바로 귀국해 광주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교회와 학교를 설립해 복음 전도에 힘썼다. 잠시도 쉬지 않고 전도에 열정을 쏟아 붓던 어느 봄날, 급성 폐...

말씀만이 생명을 전하는 데 최선이다 -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

2019년 05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William David Reynolds, 1867~1951, 이눌서) 1851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햄든-시드니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목사가 되기 위해 유니온신학교에 진학했으나 선교사로 헌신하고 남장로교 소속으로 1892년 한국으로 왔다. 충청, 호남지역에 관심을 갖고 한국인 정해원을 파송해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전주교회(현 전주서문교회)를 개척했다.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어 성경 번역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평양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던 중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지만, 평양신학교 폐교로 인해 한국으로 ...

3·1 만세운동 100주년, 다시 그날을 기억하다 - 조지 맥큔 선교사

2019년 04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조지 맥큔 선교사(George Shannon McCune, 1873~1941, 윤산온) 1873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파크대학과 미주리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1905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으로 한국에 파송받았다. 그는 3·1 만세운동과 105인 사건 같은 초기 독립운동사의 굵직한 사건을 외국에 알리다 추방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28년 재입국한 뒤 숭실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신사 참배에 저항하다가 파면당하고 다시 추방된 후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1941년 소천했다.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다! 대한 독립 만세!! -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2019년 03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Frank W. Schofield, 1889~1970, 석호필)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해 1911년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했다. 1916년 세브란스의전 교장이었던 에비슨의 초청으로 캐나다장로회 파송을 받아 한국으로 왔다. 민족 지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일제의 만행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외국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한국인의 곁에 있었다. 일본의 눈엣가시였던 스코필드는 1920년 강제 추방당했으나 해방 후 정부의 초청으로 돌아와 평생을 한국의 교육에 헌신했다. 한국이 그를 가장 필요로 했을 ...

기독교 교육에 헌신하며 일제의 만행을 알리다 - 윌리엄 린튼 선교사

2019년 0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린튼 선교사 (William Alderman Linton, 1891~1960) 1912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포함해 48년간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사역했다. 1919년 8월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 대회에 참석해 3·1운동의 실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전주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제의 강제적인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해 일제로부터 추방당했다.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의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나...

두 번의 눈물, 세 번의 헌신: 고귀하고 위대한 유진의 삶- 유진 벨 선교사

2019년 0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유진 벨 선교사 (Eugene Bell, 1868-1925, 배유지)유진 벨은 1868년 미국 켄터키주 스코트스테이션에서 태어나 센터 칼리지와 루이빌신학교를 졸업했다. 1895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특히 교육과 의료 사역에 헌신해 목포와 광주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역하던 중 두 번이나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끝까지 한국에서 헌신하다가 1925년 소천해 광주시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혔다. 그의 후손이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하는 등 계속해서...

예수를 사랑한 사람, 예수가 사랑한 사람 - 애니 베어드 선교사

2018년 1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애니 베어드 선교사(Annie Laurie Baird, 1864-1916, 안애리)1864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하노버대학 재학 중 만난 윌리엄 베어드(숭실학당 설립자)와 결혼한 후 1891년 조선에 도착해 사역을 시작했다. 숭실학당의 교수로 사역하며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수많은 찬송가와 대학 교재를 번역하고 문학 작품을 편찬했다. 암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기를 소망해 다시 돌아와 1916년 평양에서 소천했다. 베어드 부부의 묘비가 양화진에 있어 그들의 한국에 대한...

생명행전, 그 길을 걷다 -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

2018년 1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아름다웠던 하와이 진주만이 처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민족 해방 운동 확산과 세계 경제 공황으로 인해 일제의 동북아 식민 통치 계획은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전쟁의 시작, 격동의 한반도이런 긴박한 한반도의 상황을 지켜보던 각국의 선교부는 자국 선교사들의 철수를 권고한다. 1940년 11월 16일, 219명의 미국인을 태운 마리포사(S. S. Mariposa) 호가 인천항을 출항한다. 승선한 승객 대부분...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 로버트 그리어슨 선교사

2018년 10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구례선, 1868~1965)1868년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태어났다. 댈하우지의대와 장로교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898년 캐나다장로회 초대 선교사로 파송됐다. 함경도에서 주로 사역했으며, 함경도 성진에 제동병원, 보신학교 등을 세웠다. 또한 성진을 본부로 삼아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살고 있던 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도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1934년까지 조선에서 사역하고 은퇴 후 196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황해도에서 캐나다로 온 편지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의 노바스코샤(No...

회개의 눈물, 회복과 부흥의 마중물 - 로버트 하디 선교사

2018년 09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Alexander Hardie, 河鯉泳 하리영, 1865~1949)캐나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교단이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선교사로 1890년 조선에 건너와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조선으로 재입국한 뒤, 1897년에 미국 남감리회의 첫 의료선교사로 임명됐다. 철원과 원산에서 사역했으며 교육, 문서 등의 사역에도 큰 궤적을 남겼다. 1935년 은퇴 후 귀국해 1949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양심전(良心錢, Conscience 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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