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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소개

부르고 싶은 이름 ‘평양 오마니’ -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

2018년 0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 부부는 1890∼1891년 잇따라 한국에 들어와 의료 선교에 힘썼다. 남편이 1894년 평양에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홀은 귀국했다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왔다. 홀은 평양에 기홀병원과 광혜여원을 세웠고, 한국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해 맹인교육을 실시했다. 1917년부터는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여자의학원(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을 설립했다. 1951년 85세로 사망한 홀은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nbs...

다시 복음 앞에, 다시 이웃 곁에 - 박에스더 선교사

2018년 0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박에스더(Esther K. Pak, 김정동[金點童], 1877~1910)박에스더 선교사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에스더는 세례명이고 남편의 성을 따랐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돕던 김홍택의 셋째 딸로, 이화학당에서 수학했다. 보구여관에서 통역과 간호 보조로 일하다가 의사의 소명을 받았다. 박유산과 결혼한 뒤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해 한국 최초로 여성 의사가 됐다. 귀국해 의료와 교육 사역에 헌신하다가 서른넷에 결핵으로 소천했다.  1900년 성탄절, 한국 최초의 신학 잡지 <신학월보>가 창간됐다. 순한글로 발행된 이 잡지는 ...

나는 지금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 셔우드 홀 선교사

2017년 1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셔우드 홀(Sherwood Hall, 하락[賀樂], 1893~1991)셔우드 홀 선교사는 로제타 홀과 제임스 홀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의료선교 사역을 돕던 그는 사업가의 꿈을 접고 결핵 전문의가 돼 한국에서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했다. 1932년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해 결핵요양병원을 설립했고, <요양촌>이라는 보건 잡지도 발간해 결핵 예방에 앞장섰다. 이후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을 발간하기도 했다.‘우리 시대의 영웅, 소방관’ 올해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의 주제다. 대한결핵협회가 화재, 재난, 재해, 그 밖...

가라 하신 그곳에서 -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

2017년 1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하락[賀樂], 1860~1894)캐나다의 의료선교사로서 1891년 조선에 도착했으며, 1892년 R.S. 홀과 결혼하고, 1893년 아들 S. 홀이 태어났다. 평양선교기지 개척 책임자였으며, 의료봉사를 위해 조선 각지를 순회했다. 의료선교사업을 하다가 1894년 발진티푸스로 소천 후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 1897년 평양에 홀기념병원이 개원됐으며, 미국에서 <월리엄 제임스 홀의 생애>가 출간되기도 했다.옛적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는 전래민요 한가락이 있다. 지방마다 곡조가 조금은...

조선 여성들에게 전한 예수 사랑 -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

2017년 10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메리 스크랜턴(Mary Fletcher Scranton, 1832~1909)1885년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가정과 함께 조선으로 파송된 첫 여선교사. 조선 여인들을 위해 수많은 학교와 교회를 세웠으며, 여성 전문 병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정년을 넘긴 나이에도 전도부인들과 순회 전도를 하다가 1909년 세상을 떠나 양화진외국인묘역에 안장됐다.“어머니가 심히 아파 우리 모두 걱정입니다. 지금 어머니는 겨우 침대 밖으로 나올 정도이고 아무 사역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1901년 2월, 선교 본부로 보내는 아들의 편지에는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안타까움...

낮아짐, 가장 아름다운 시작 -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

2017년 09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스크랜턴 (William Benton Scranton, 시란돈施蘭敦, 1856∼1922)미국 뉴욕 의과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인 삶을 살던 그는 장티푸스로 고생하다가 남은 생을 선교사로 결단하고, 1885년 조선에 입국해 의료 선교 사역을 펼쳤다. 가난한 조선 민중들을 위해 정동진료소를 세우고 무료 진료했으며, 서대문 밖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친일 정책에 반대해 선교사직을 내려놓고 중국, 일본 등지에서 복음 전도에 매진한 후 1922년에 생을 마쳤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어떤 병에 걸렸든지 아무 날이나 열 시에 빈 병을 가지고 ...

갈망(渴望):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 존 헤론 선교사

2017년 07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존 헤론 선교사(John William Heron, 혜론[惠論], 1856~1890) 영국에서 1856년 출생한 그는 1870년 미국으로 이주해 테네시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1884년 미국 장로교 최초 조선 선교사로 임명돼 1885년 파송됐고, 제중원 2대 원장, 고종 주치의로 활동하며 조선인 치료와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1890년 전염성 이질로 소천하고, 양화진에 묻혔다. 1884년 7월 3일 고종(高宗)이 선교 윤허(宣敎允許)를 허락하던 날, 공사관 통역관으로 일하던 윤치호(尹致昊)는 그의 일기에 이 사실을 기록해 놓았...

‘그날을 보기 위하여 오늘을 살다’ - 알렌 선교사

2017년 06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알렌 선교사(Horace N. Allen, 안련[安連], 1858~1932)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출생한 알렌은 신학과 의학을 전공했으며, 북장로교 외국 선교부 의료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사역했다. 이후 1884년 조선에 입국해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수술해 제중원을 설립했고, 의료 선교를 펼쳤다. 이후 1890년 미국 공사관의 외교관으로서도 활동했다.일본에서 사역하던 맥클레이(R.S.Maclay) 선교사는 서구 교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조선을 방문해 1884년 7월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한 선교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해 윤허를 받았다...

한 영혼을 위해 교육에 힘쓴 삶 - 아펜젤러 선교사

2017년 05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아펜젤러 선교사(Henry Gerhard Appenzeller, 아편설라, 1858~1902) 일본 선교에 지원했던 아펜젤러는 미국 감리교 선교회에서 조선 파견 선교사로 임명돼, 한국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는 성경번역자회의 참석을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충돌사고로 익사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

끊임없는 헌신, 변함없는 사랑 - 언더우드 선교사

2017년 04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조선이 작년에 문호를 열었습니다. 지금 조선은 1,300만 명의 사람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난과 질병,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조선에 가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을 위해 선교사로 가기 원하십니다.” 1883년, 미국신학교연맹 모임에 참여했던 한 젊은이가 알버트 목사를 통해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에 관한 정보를 듣는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통해 문호를 개방한 조선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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