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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제자훈련

나의 목회고민 - 교회 전통을 끌어안고 가는 목회

2018년 02월 이상철 목사_ 양주목민교회

‘당신의 목회 비전은 무엇입니까?’ 목회자 청빙 심사를 하는 교회가 반드시 묻는 주요 질문이다. 아마도 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정보를 얻고자 할 것이다. 첫째, 이 목회자가 목회에 어떤 꿈을 갖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어떤 방안을 가졌는가? 둘째, 그 꿈과 방향은 우리 교회의 전통과 부합하는가? 셋째, 이것의 기초가 되는 성경관, 목회관은 어떠하며, 지금까지의 목회 성과는 어떠했는가? 이다. 그런데 교회가 요구하는 이 세 가지 기준이 충족돼 청빙된 목사라 할지라도, 청빙 후 목회 사역을 시작하다 보면 제일 ...

나의 목회고민 - 더디지만 정도의 길을 걸으리라

2018년 01월 김세광 목사_ 꿈이가득한교회

나는 시골 교회 목사다. 물론 지금은 시골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교회 주변이 많이 개발돼 신도시가 돼 가고 있다. 나는 2006년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고민과 고난을 통과해 왔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제2의 사역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나는 2004년까지는 100여 명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서울 상도동의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겼고, 담임목사님이 은퇴하시면 후임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개척의 길로 이끌어 가셨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교회를 떠나 충남 홍성이라는 지역...

해외 제자훈련 * 척박한 땅에 청년 제자를 세운다!

2016년 12월 최광규 선교사_ 도미니카 가나안교회

도미니카 1호 선교사로 파송받다나는 선교사로 헌신한 후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훈련, 전도훈련, 설교훈련 등을 받았다. 파송받기 전에 섬겼던 교회는 청년, 대학생의 제자훈련 사역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담임목사님은 제3형제회 총무와 전도위원회 간사로 봉사하면서 신학교에 다니던 내게 대학부에 가서 제자훈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1987년 GMTC(한국선교훈련원)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훈련생 17명은(8개 가정, 독신 1명) 1년간 공동생활을 하며 제자훈련, 전도훈련, 타 문화 적응훈련 등을 이수했다. 수업하는 가운데 ...

해외제자훈련 * 한인 2세를 위한 교회, 열방을 축복하는 통로

2016년 11월 고영규 목사_ 브라질 아과비바교회

너의 본토 집을 떠나라!17세에 브라질로 이민 온 나는 이민자들을 위한 전형적인 목회자로 훈련받았다. 한인 이민자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성장했으며, 평범하게 한 교회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그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그리고 부목사로 섬겼다.밟고 사는 땅은 브라질이었지만, 목회 현장은 마치 1970~80대 한국 교회의 모습이었다. 브라질을 잘 알고, 브라질 언어(포르투갈어)에 능한 교역자가 이민 교회의 미래 목회자상이라는 교회의 비전 덕분(?)에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유학을 갔다 돌아온 후에도 동일한...

해외 제자훈련 * 사람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도구는 제자훈련!

2016년 10월 이종식 목사_ 뉴욕 베이사이드장로교회

제자훈련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나는 1991년도 뉴욕 베이사이드란 지역에서 성도 두 가정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3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성도 수는 늘어 갔지만 성도들의 삶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됐다. 성도들이 말씀도 잘 듣고 은혜도 받는 것 같은데, 생활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나는 성도들의 삶을 성경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1994년 LA에서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친구 목사로부터 듣고 참석하게 됐다. 당시 나는 신학교 시...

해외 제자훈련 *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야간열차

2016년 09월 류병재 목사_ 시드니 실로암장로교회

“목사님! 예전에 제게 해 주셨던 말씀 기억하고 계세요?” 지난 주일 밤 대학 강의 차 멜버른 공항에 도착한 나는 춥고 바람 부는 한겨울의 날씨 때문에 총총걸음으로 마중 나온 어느 한인 교회 목사님의 차에 급하게 올라탔다. 그런데 반가운 인사를 뒤로하고 이런 질문부터 받았다. 나는 약간은 걱정되는 어투로 “글쎄요. 제가 뭐라고 했죠?” 하니까 “제가 한참 목회가 힘들 때 시드니를 방문했는데, 그때 목사님께서 제게 ‘열차가 목적지를 향해 계속 가다 보면 목적지가 다른 사람은 기차에서 내리겠지만, 목적지가 같은 사람은 기차에 올라탈 것이다’라고 말씀해 ...

해외 제자훈련 * 조국 교회에 ‘정수기’ 같은 교회가 되길

2016년 07월 정수일 목사_ 샌디에이고 한빛교회

제자훈련 막연함, 미주 CAL세미나로 풀다제자훈련 목회는 내가 신학생일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주제였다. 옥한흠 목사님이 제자훈련을 시작하실 때 관심을 갖긴 했지만, 이를 배우거나 접할 곳이 없었다. 당시 옥 목사님은 신학생들에게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과목에 제자훈련이 있었고, 방학 동안에 제자훈련을 접한 교수님들과 수련회도 만들어 참여하기도 하고, 많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귀납적 성경공부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이를 통해 제자훈련 목회에 대한 평생 비전을 갖게 됐다. 부교역자 시절 대학청년...

해외 제자훈련 * 제자훈련 설계도가 있어야 건강한 교회를 세운다

2016년 06월 남우택 목사_ 오클랜드 한우리교회

뉴질랜드 한인 사회는 1989년 말에 제1기 투자 이민으로 시작됐는데, 1992년부터 도입된 점수제 이민으로 러시 열풍이 불어 매월 수백 명의 이민자가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그들 대부분은 30~40대의 중산층에 고학력자들로,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을 찾아 나선 이른바 복지형 이민자들이었다. 동시에 대학·청년들의 영어 연수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 한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1990년 2월부터 바이블칼리지(현 LaidLaw College)에서 공부하면서 주일 오전에는 뉴질랜드 개혁교회에 출석해 예배드리고, 오후에는...

해외 제자훈련 * 힘들어도 제자훈련을 해야 할 이유

2016년 05월 이정철 목사_ 필라델피아 제자교회

20년 전 필라델피아 제자교회로 부임했을 때, 교회 사정상 선교비 지원을 하다가 중단했던 선교지가 있었다. 다시 그 선교지에 “교회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중단했던 것을 용서하시고 다시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선교비를 보냈던 적이 있다. 그 편지를 받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미비아 조현신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보내 주신 주보와 선교헌금 잘 받았습니다. 선교가 지속된다는 기쁨보다 저희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기쁩니다. 그리고 주보에 보니까 제자훈련 하시는 목사님이신 것 같은데, 저도 오래전부터 나미비아에...

개척 교회 제자훈련, 한 사람만 있어도 한다!

2016년 02월 정재환 목사_ 제주예평교회

내가 제자훈련을 교회 개척에 접목하게 된 계기는 2008년 3월에 있었던 국제제자훈련원의 개척 교회 세미나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제주지역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중 제주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로 진로를 정했다. 그때 사랑의교회가 개척 30주년을 맞으며 개척 교회 세미나를 열었는데, 아내와 함께 세미나에 참석했다. 첫날 저녁집회에서 오정현 목사님의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핵심 가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목숨 걸 만한 일이라면 물이 나올 때까지 샘을 파야 한다. 한 우물을 파면 샘이 솟는다”라는 말씀이 교회 개척을 준비하던 내게 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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